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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마드 라이프

"제야의 종소리 대신 파도 소리를 듣습니다" 영하 10도 한국을 탈출해, 푸꾸옥의 여름 밤에서 보내는 2025년의 마지막 편지

by din-world 2025. 12. 31.

프롤로그: 패딩을 벗어 던진 12월 31일

매년 이맘때면 기억나는 풍경이 있습니다. 두꺼운 롱패딩을 껴입고 입김을 호호 불며 보신각 종소리를 기다리거나, 따뜻한 전기장판 위에서 귤을 까먹으며 연기 대상 시상식을 보던 풍경들. 한국은 지금 영하 10도의 한파와 폭설이 내린다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2025년의 마지막 날, 저는 반팔 티셔츠와 쪼리 차림으로 베트남 푸꾸옥의 해변에 앉아 있습니다. 눈앞에는 하얀 눈 대신 하얀 파도가 부서지고, 차가운 바람 대신 끈적하고 따뜻한 공기가 저를 감쌉니다.

"정말 떠날 수 있을까?" 수천 번 고민하고 망설였던 2025년이 저물어갑니다. 사표를 던지던 날의 손 떨림, 인천공항에서의 막막함, 그리고 이곳 낯선 땅에서의 서툰 적응기까지. 오늘은 1년 중 가장 특별한 날, 디지털 노마드가 여름 나라에서 새해를 맞이하는 생생한 풍경마지막 소회를 전해드립니다.


1. 이곳엔 '의무적인 송년회'가 없습니다

한국에서의 12월은 늘 '숙제' 같았습니다. 마감해야 할 업무들은 산더미처럼 쌓여 있고, 원하지 않는 송년회 자리에 끌려가 "올 한 해 수고했다"며 억지 건배를 해야 했습니다. 간이 쉴 틈이 없었고, 내 시간은 늘 남을 위해 쓰였습니다.

하지만 이곳 푸꾸옥의 연말은 완벽한 **'나를 위한 축제'**입니다.

  • 선셋 타운(Sunset Town)의 카운트다운: 남쪽 끝자락, 유럽의 지중해 마을을 옮겨 놓은 듯한 선셋 타운은 지금 축제 분위기입니다. 바다 위로 길게 뻗은 '키스 브릿지(Kiss Bridge)' 너머로 오늘 밤 거대한 불꽃놀이가 예정되어 있습니다.
  • 비치 클럽의 낯선 건배: 즈엉동 해변의 비치 바(Bar)들은 오늘 밤 잠들지 않을 기세입니다. 이름도 모르는 전 세계 여행자들이 모여 맥주병을 부딪칩니다. 여기선 아무도 제 나이나, 직업이나, 연봉을 묻지 않습니다. 그저 "Happy New Year!" 한 마디면 친구가 됩니다.


2. 2025년 회고: '안정'을 버리고 '불안'을 샀다

올해 제가 한 일 중 가장 잘한 일은 무엇일까요? 주식 대박이 난 것도, 로또에 당첨된 것도 아닙니다. 바로 **"나를 불행하게 하는 안정적인 환경에서, 내 발로 걸어 나온 것"**입니다.

우리는 늘 '안정'을 추구하라고 배웁니다. 하지만 그 안정이 나를 갉아먹고 있다면, 그건 안정이 아니라 '마취'일 뿐이더군요. 퇴사하고 비행기 표를 끊었을 때, 친구들은 "너 미쳤어? 나가면 고생이야"라고 말렸습니다. 맞습니다. 나와보니 고생입니다. 말도 안 통하고, 인터넷은 느리고, 미래는 불안합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살아있음'**을 느낍니다. 남이 시키는 일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알람 소리가 아니라 햇살을 받으며 눈을 뜨는 삶. 비록 통장 잔고는 조금 줄었을지 몰라도, 제 인생의 **'경험 잔고'**와 **'자존감 잔고'**는 그 어느 해보다 두둑하게 쌓였습니다.


3. 노마드의 새해 소원: 거창하지 않게, 소박하게

예전에는 다이어리에 거창한 목표를 적었습니다. "연봉 1억 달성", "다이어트 10kg 감량", "영어 마스터". 하지만 막상 떠나와 보니, 행복은 그런 거창한 성취에 있지 않더군요. 2026년 저의 소원은 아주 소박해졌습니다.

  1. 아프지 말기: 낯선 땅에서 아프면 서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병원비가 비쌉니다. (건강이 최고 자산입니다.)
  2. 와이파이 끊기지 않기: 생존과 직결된 문제입니다. 인터넷만 되면 어디서든 돈을 벌 수 있으니까요.
  3. 매일 바다 한 번 보기: 일하느라 바빠서 눈앞의 아름다움을 놓치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하루 한 번, 멍하니 노을을 보는 여유를 잃지 않는 것.

숙소 인피니티 풀


에필로그: Happy New Year from Phu Quoc!

이 글을 읽으시는 여러분의 2025년은 어떠셨나요? 혹시 후회되는 일이 있거나, 힘들었던 기억이 있다면 저무는 푸꾸옥의 붉은 태양에 모두 태워 보내시길 바랍니다.

그리고 다가오는 2026년은... 조금 더 제멋대로여도 괜찮고, 조금 더 불안해도 괜찮으니, 부디 '남'이 아닌 '나'를 위해 사는 한 해가 되시길, 이곳 따뜻한 남쪽 섬에서 기도하겠습니다.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Chuc Mung Nam Moi!) 🎆

 

푸꾸옥 생활기 https://din-world.tistory.com/98

 

D+1 한국을 떠나 도착한 첫 번째 도시, 베트남 푸꾸옥: 40대 노마드의 워케이션 생존기 (인터넷/빈

프롤로그: 겨울왕국에서 탈출해 남쪽 섬으로인천공항의 차가운 공기를 뒤로하고 비행기로 5시간 30분. 푸꾸옥 공항의 자동문이 열리는 순간, 안경에 뿌옇게 김이 서렸습니다.훅 끼쳐오는 덥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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